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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스크랩] 청산은 나를 보고... (지리산 종주기1)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리산종주를 위해 구례구역에 도착했으나 불의의 열차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洪某님의 명복을 빕니다. 전세의 어떤 인연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참사를 당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숙세(宿世)의 모든 업(業)을 소멸하고 부디 극락왕생하시기를.....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원각이 보조하니 적과 멸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시회대중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윗 글은 이미 열반하신 성철스님께서 1981년 1월 15일 대한불교조계종 제7대 종정으로 취임하시면서 말씀하신 법어(法語)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하여 성불(成佛)하신 성철스님이 느끼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과 일반 범부(凡夫)에 불과한 우리들이 느끼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은 천양지차가 있겠지만 굳이 그 의미를 따지자면 ‘진리는 영원하다’라고나 할까...


  물은 항상 스스로를 가장 낮은 곳으로 낮춰 자기의 진로를 찾아가며, 멈추는 일이 없다. 또한 스스로를 맑게 할 뿐만아니라 다른 더러움까지도 모두 다 씻어주고 깨끗하게 해 준다.

산은 어떠한가? 물과는 반대로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항상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고 안식처가 되어 주는 곳이 산이 아니던가?

 

 


# 성산(聖山) 카일라스(Kailas, 해발 6,71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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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모랑마(히말라야)에 위치한 카일라스가 세계의 신산(神山)이라는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카일라스는 그 곳에 있어 산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고 깨우침을 주고 있다.

신의 산 카일라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욕망만을 쫓는 삶의 습관을 바꾸어 영혼을 드높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카일라스가 세계의 성산이라면 지리산은 단연코 우리나라의 성산(聖山)이다.

신라 박혁거세를 낳은 ‘어머니의 산’으로 받들어지며 일찍부터 성산(聖山)으로 숭배된 지리산은 한국 성모신앙의 모태가 되었으며, 역사적으로도 온갖 아픔과 고난을 겪고 있던 수많은 민중들을 품어 안았다. 하지만 지리산은 아프고 고달픈 민초들을 품어안고 위안을 준 것으로 그치지만은 않았다. 지리산은 그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생명력을 주었다. 그것은 지리산이 모성의 산이자 부성(父性)의 산이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용산역~구례구역(22:50~03:22)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항상 마음을 설레이게 만든다. 그 설레임 때문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잠은 오지 않는다. 무박때마다 늘 그래왔듯이... 브라이언 와이스 박사가 쓴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예전에 김영우 박사의 [전생여행]을 보고 윤회가 실재함을 이해했고, 최근에 읽은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와 [오대산 노스님의 그 다음 이야기]를 읽으면서 확신을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전율을 느꼈다. 전생에 쌓은 업(業)에 따라 후생에서 그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데 ‘환생’의 주인공인 캐서린은 모두 88번의 전생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은 모두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오대산 노스님은 한낱 미물일지라도 살생해서는 안되며, 공덕을 많이 쌓으라고 당부에 또 당부를 하셨다. 구례구역에 도착할 때쯤 한 권을 거의 다 읽었다. 가장 힘들게 읽었던 베어드 T. 스폴딩의 [초인들의 삶과 가르침을 찾아서]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역을 빠져나왔다.

 

 


# 구례구역~성삼재(03:4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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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은 빼어나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되 빼어나지 못하고’라는 서산대사의 비유가 있듯이 지리산은 날카롭고 빼어남은 부족하나 웅장하고 두리뭉실한 기운이 돋보이는 산이다. 행정구역상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山 208번지에 소재한 천왕봉(1,915m)을 주봉으로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이 대표적이며, 천왕봉에서 노고단을 잇는 100리 능선에는 1천 5백미터가 넘는 고봉이 10개, 1천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20여개나 있을 정도로 높고 크다. 또한 구비구비 마다 마을과 사람을 품고 보듬으며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그 산을 종주하기 위해 우리는 출발했다. 휘영청 밝은 달이 서편으로 지기도 전에 어느새 동편에서는 여명이 밝아온다

 

 


# 성삼재~노고단 대피소(04:22~04:49)

 

   지리산은 왜 지리산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지리산에는 세 개의 큰 봉우리가 있는데 천왕봉(天王峯 1915m), 반야봉(般若峯 1752m), 노고단(老姑檀 1506m)이 그것이다. 천왕봉에는 곧고 바르며 인의로운 선비의 기질과 같은 기세가 있다하여 유가(儒家)를 상징하고, 반야봉에는 반야사상과 자비로운 부처의 기세가 숨어있다 하여 불가(佛家)를 상징하며, 노고단에는 대자연의 섭리인 무위자연의 사상과 도인의 기풍이 서려있다 하여 도가(道家)를 상징하게 되었는데, 이처럼 지혜와 사상이 각각 다른 세 봉우리가 있는 산이라 하여 지혜로울 지(智)자와 다를 이(異)자를 써서 지리산이라고 한다고 한다.

 

 


# 노고단 대피소~노고단 고개(05: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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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을 지리산의 3대 영봉이라고 한다. 왜일까? 높이로 치면 천왕봉 다음은 중봉이며, 그 다음이 제석봉이다. 노고단은 촛대봉이나 영신봉, 명선봉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 어째서 3대 영봉으로 꼽히는 것일까? 그것은 이들 봉우리에 신(神)이 정주(定住)하는 것으로 생각해온 때문이다. 그 신들도 제각기 다르다. 천왕봉은 어머니신(여신), 반야봉은 아버지신(남신), 노고단은 할머니신(여신)이 존재한다고 믿어왔다. 곧 지리산의 3대 영봉에는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신이 존재하면서 제각각 다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노고단은 마고(麻姑)할미가 정주한다고 하여 제단을 만들어 신라 때부터 나라에서 중사의 예를 갖추고 국태민안을 기원했다. 물론 마고할미가 중국의 여신 이름을 따왔다는 주장도 있고,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를 마고할미로 부른 데서 유래한다는 주장도 있다. 노고단은 선도성모, 곧 어머니 산이면서도 마고, 곧 할미신이 정주하는 곳으로 인식돼온 것이다.

 

 


# 노고단 고개~임걸령 센터(05:2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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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에는 수천 년 전부터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오르고 내렸다. 신라 말기 고운 최치원은 지리산 속에서 신선처럼 살다가 갔으며, 고려 무신정권기 모든 관직을 버리고 명산을 방랑하며 살다간 해좌칠현(海左七賢)과 조선시대 영남사림에 이르기까지 숱한 시인묵객, 선비들이 지리산을 다녀갔다. 그리고 오늘날도 끊임없는 등산객들이 지리산을 찾아 누비고 있으며 이는 지리산과 인류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 지리산은 위대한 대자연이며 인간과의 불가분의 인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지리산 종주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노고단을 출발해 돼지령으로 가다가 좌측을 보니 지리산 산신령께서 우리를 반겨주기 위해 마련한 듯한 운해가 감탄사를 자아낼 만큼 멋있게 펼쳐져 있다. 마치 한 마리 학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날개짓을 하듯 운해가 거기에 그렇게 떠 있었다. 귀에 꽂은 MP3에서는 양방언님이 작곡한 임권택감독의 100번째 작품 ‘천년학’의 OST가 애절하게 흘러 나온다.

 

 


# 임걸령 센터~노루목(07:20~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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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봉은 아버지, 곧 남신으로 마야고의 전설이 뒷받침한다. 천왕봉의 마야고는 멀리 100리 서쪽에 있는 반야(般若)를 사모하여 옷 한벌을 고이 지어 만나 전해줄 기회를 찾고 있었다. 달 밝은 어느날 마야고는 반야의 옷을 품에 안고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 때 꿈에도 그리던 반야가 자기 쪽으로 손짓을 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야고는 바람에 나부끼는 꽃잎의 물결 속으로 반야의 옷을 든 채 달려갔다. 그리고 정신없이 무엇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렸는데, 이상하게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마야고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모하는 반야는 보이지 않고, 쇠별꽃들만 달빛 아래서 바람에 흐느적거릴 뿐이었다. 쇠별꽃의 흐느적거림을 반야가 걸어오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마야고는 자신을 속인 쇠별꽃을 다시는 피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정성껏 지었던 반야의 옷도 갈기갈기 찢어서 숲 속 여기저기에 흩날려 버렸다. 마야고가 갈기갈기 찢어 날려버린 반야의 옷은 소나무 가지에 흰 실오라기처럼 걸려 기생하는 풍란(風蘭)으로 되살아났다고 한다.

  애절한 전설이 깃든 반야봉, 그러나 우리는 시간관계상 올라가보지 못하고 통과해야 했다.

 

 


# 노루목~삼도봉~화개재(07:55~08:0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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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 섬 들어가는 큰 종을 보소/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다오/어떻게 해야만 두류산처럼/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 (남명의 시 ‘제덕산계정주’)

조선 중기의 유학자 남명 조식에게 지리산은 영원한 정신적 지주이자 표상이었다.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난 남명은 평생을 지리산에서 살다 지리산에 묻혔다. 지리산에 오르내리기를 십수차례. 지리산 산행기 ‘유두류록’에서 남명은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인간을 보고 세상을 보기’(看山看水 看人看世) 위해 지리산을 찾는다고 적었다. 우리 일행도 또한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인간을 보고 세상을 보기’위해 걷고 또 걷는다. (2편에 계속)

출처 : 좋은생각 산사랑
글쓴이 : 인디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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