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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스크랩] 청산은 나를 보고... (지리산 종주기2)

 # 화개재~토끼봉~연하천(08:50~09:20~10:25)

  김현태님은 그의 시집 <그대는 왠지 느낌이 좋습니다>에 실린 ‘인연이라는 것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인연이란.

잠자리 날개가 바위에

스쳐 그 바위가 눈꽃처럼 하이얀 가루가

될 즈음 그때서야 한번 찾아오는 것이라고....!!


  흔히 하는 얘기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현태님의 표현대로 ‘잠자리 날개가 바위에 스쳐 그 바위가 눈꽃처럼 하이얀 가루가 될 즈음 그때서야 한번 찾아오는 것’이 인연이라면 우리 산사랑 사람들은 어떤 인연으로 만난 것일까? 아마도 전세에 대단한 관계로 맺어지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들어 카페가 더 활성화되고 좋은 사람들이 점점 더 가입하고 있다.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그 氣의 파장이 점점 더 커져서 주위에 영향을 미친다. 아마도 그 영향이지 않을까 혼자만의 생각을 해 본다.

 

 


# 연하천~벽소령 대피소(12:20~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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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고 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같다.

인간의 행복을 목표로 하는 종교... 마을마다 셀 수 없을 만큼 수 많은 교회가 있고 산자락마다 많은 절이 있음에도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느끼거나 아니면 너무 멀리서 행복을 찾는 것은 아닐까?

지금 산길을 걷고 있는 이 순간, 망념과 번뇌와 집착을 버리고 묵묵히 걷는 그 가운데 바로 행복이 있을지니 너무 멀리서 찾지 않기를...

 

 


# 벽소령 대피소~칠선봉~세석 대피소(14:30~16:40~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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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에 발간돼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김정빈의 장편소설 [丹]의 주인공이자 실존했던 인물인 우학도인 권태훈翁은 자신의 좌우명을 去去去中知 (거거거중지) 行行行裡覺 (행행행리각)이라고 했다. 아직도 그 분의 형형했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去去去中知 (거거거중지) - 가고 가고 가는 가운데 알게 되고

行行行裡覺 (행행행리각) -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가운데 깨닫게 된다.


이 말은 ‘세상 속으로 뛰어든 신선’께서 정신수련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음가짐이나 자세를 염두에 두고 한 것이겠지만 비단 어디 그 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 특히 우리같은 등산객들에게는 가슴으로 와 닿는 구절이니 한 글자 바꾸면

去去去中至 (거거거중지) - 가고 가고 가는 가운데 도달하게 되고...


종주코스중 가장 힘들다. 이제부터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걷는 내내 ‘去去去中至 (거거거중지)’를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 세석 대피소(1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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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장의 밤은 9시에 소등을 한다. 전날 날밤을 샜으나 잠은 오지 않는다. 귀에 꽂은 MP3의 50여 곡이 한 바퀴를 다 돌 즈음 잠깐 눈을 붙였을까. 아들로부터 SOS 신호를 받고 안절부절하는 어느 아버지의 전화소리에 이내 잠을 깬다. 30여분을 112, 119에 통사정을 하는 아버지의 부성(父性)을 느껴본다. 결국은 아들의 장난으로 밝혀졌다. 왠지 허전하다.

새벽 1시에 4명이 나간 틈을 이용해 행랑아범님, 레드벌룬님과 같이 침상으로 올라갔다. 행랑아범님께서 새로 장만하신(?) 쌍기통 할리 데이비슨(Harley-Davidson)에 시동을 건다. 우렁차고 웅장한 시동소리가 산장을 울린다. 이에 뒤질세라 100cc와 50cc 스쿠터들도 일제히 엑셀을 밟는다. 4시에 이불을 털고 일어났다.

 



# 세석 대피소~장터목 대피소(05:0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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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의 사서삼경중 삼경의 하나인 주역에 보면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스러운 일이 있다는 뜻이다. 자칭 강호동양학자 조용헌 교수는 이 말이 주역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명리학의 대가 백운산 선생도 운명이 존재하지만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적선’을 많이 하는 것이라고 한다. 무조건 베풀라고 몇 번이고 강조한다. 불가(佛家)에서도 살아 생전에 공덕을 많이 쌓을 것을 권하고 또 권한다. 보살의 실천 덕목인 육바라밀(六波羅密) 가운데 제1 덕목이 ‘보시(布施)’이다. 이는 자비의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푸는 것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주는가가 아니라 주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인 것이다.


 


# 장터목 대피소~천왕봉(07:10~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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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은 쉽게 자신의 자태를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성산(聖山)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천왕봉에는 운해가 가득하다. 그 운해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산에 한 번 감으로써 나를 한번 더 돌아보고

산에 한 번 감으로써 가족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산에 한 번 감으로써 내 주위를 한 번 더 돌아보고

산에 한 번 감으로써 교만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산에 한 번 감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산에 한 번 감으로써 속세의 욕망에 찌든 때를 버릴려고 노력하고

산에 한 번 감으로써 쓸데 없는 망념과 집착과 번뇌를 버릴려고 노력하는데

이번 산행에도 과연 그러했는지를....

 

 


# 천왕봉~장터목 대피소(08:10~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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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의 십계명(十誡命, Ten Commandments)이나 불교의 십계(범망경(梵網經)의 십중금계(十重禁戒))에서는 모든 인류가 보편타당하게 지켜야 할 나름대로의 열 가지 계율을 명시해 놓고 있다. 그 가운데는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이웃의 허물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계율도 있다. 나는 생각한다. 너무나도 쉽게 친구의, 이웃의 허물을 말하지는 않았는가? 나를 먼저 돌아볼 일이다.

 

 


# 장터목 대피소~백무동(09:10~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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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착은 구속이요, 놓으면 자유다. 버릴 수 있는 데까지 버리고 비울 수 있는 데까지 비우라고 현자들은 말한다. 비우고 버리지를 못하면 채울 수가 없다.


백무동으로 내려오는 길은 돌계단과 너덜길의 연속이다.

돌계단을 밟으며 교만을 버리고, 돌부리를 밟으며 망념을 버리고, 한 걸음 내딛으며 집착을 버리고 또 한 걸음 내딛으며 번뇌를 버린다.


문득 고려말 선승이신 나옹 혜근((懶翁 慧勤)스님의 시 한수가 내 마음을 울린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 않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없다 하지 않네

번뇌도 벗어 놓고 욕심도 벗어 놓고

강같이 구름 같이 말없이 가라 하네

출처 : 좋은생각 산사랑
글쓴이 : 인디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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