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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로하스

[스크랩] Re: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스트로베일로 지은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동강사무소인 동강사랑입니다.

동강 일대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부지를 매입해서 지은 집이지요.

초창기의 모습이라 지금은 많이 바뀌었을 겁니다.

당시 주도적으로 이 집을 지었던 이웅희, 홍순천, 호용수 등과 인연이 있어

저도 한동안 이 집을 짓는 데 참여했더랬습니다.

아래 글은 홍순천이 이 집을 짓고나서 쓴 글입니다.

 

 

바람직한 살림집의 생태적 대안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 홍순천 부장


삶을 유지하기 위한 몇 가지 필요조건 중에 집은 중요한 부분에 속한다.

원시주거로부터 꾸준한 진보를 거쳐 온 집의 형태는 오늘날 놀라우리만치 편안한 생활을 보장하는데 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최근 집으로부터 야기되는 질병과 에너지문제로 건강하고 생태적인 집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경제가치로만 치부되던 집이 이제는 건강한 생활이라는 부분과 만나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대체 집이란 무엇이며 건강한 생활, 건전한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집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내게도 지나칠 수 없는 과제다.



집이 뭐지?


제5공화국이 칼날 같은 권력을 들이 댈 무렵, 나는 경기도 일원의 시골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갔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당시의 서울은 제3공화국의 개발 정책이 무르익어 가던 차라 도시 전체가 온통 공사판이었다.

가난한 시골사람이었던 아버지는 내게 전세는 물론 사글세라도 방을 얻어 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안면이 있는 아버지의 친구 분 집을 전전하는 것으로 내 서울 생활은 시작되었다.

가난하기는 했지만 초롱초롱한 별을 헤아리며 잠이 들 수 있었던 생활이 그리웠지만

그런 것은 일체 허접하고 원시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응암동이나 홍제동의 산골짜기 판자 집에라도 삶의 뿌리를 내려야 서울양반으로 행세를 할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서울로, 서울로 삶의 근거지를 옮겨 왔다.

 

시카고학파를 형성한 설리번(Sullivan, Louis Henry)의 기능주의 건축이 성서처럼 답습되던 당시

건축학계의 주류는 말 그대로 기능주의였다.

건축의 모든 부분은 그 목적과 기능에 따라 설계되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건축 구조와 재료의 경제성, 역학적 합리성, 건물의 합목적성만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건물들이

첨단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공간과 기능, 경제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부분은

제5공화국을 닮아 누구도 간섭 할 수 없는 성역이었다.

새마을 운동을 첨병으로 이 땅에 기능주의 건축이 들어오고 나서 우리 살림집의 양상은 많이 달라졌다.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한 설계를 했고 건축업자들은 돈이 되는 집을 다투어 짓기 시작했다.

시장의 논리에 최대한 충실한 집이 들어서면서 집을 짓는 것은 전문가들의 일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사람들은 그저 돈을 주고 집을 사는 것으로, 사두면 돈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집은 그저 재산의 일부이거나 재산을 늘리는 도구로 전락했다.

넓은 평수에 첨단 시설을 한 것이 부의 기준이고 돈벌이의 수단이 되었다.

그런 집에서 살다보니 문화도 달라졌다. 문화도 그저 돈을 주고 사면 되는 것으로 전락했다.

비슷비슷한 외관에 비슷비슷한 문화, 거세된 가축처럼 사육당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남루한 서울 생활을 전전 하면서 피곤한 육신을 뉠 자리 하나 변변히 장만하지 못했던 나는

급기야 침낭을 싸들고 강의실에서 한 학기를 보내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인조석 바닥에 침낭을 깔아도 파고드는 한기를 어쩔 수 없어서

책상 앞에 앉아 밤을 새며 내게 과연 집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당시의 건축계에서 나는 내 집짓기를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자본의 부속으로 편승 하는 것이 입맛에 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내 능력 밖의 일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동안, 나는 집짓기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걸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나무를 줍기 위해 뒷산을 어슬렁거리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던 내게 집은 살아 있는 생명이었다.

돈으로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쓰다듬고 보듬어야 하는 친구였다.

삭정이 하나라도 더 먹여야 온기를 잃지 않는 삶의 그릇이었다.

구구한 진단이나 허망한 논리로 설명 할 수 없는 생명을 집은 스스로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하늘까지 닿을 마천루[摩天樓, skyscraper]를 세우다가 멸망한 문명의 흔적은 역사의 도처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모태를 벗어나 피곤한 몸을 추스르다 육신을 벗어 날 때 함께 스러지면 족한 것이 집이 아닐까?

달팽이도 전복도 자기 집을 후손에게 물려주지는 않는다.

집은 그저 알몸을 가리는 한 벌 옷의 기능을 갖추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얼굴이 삶의 여정을 드러내듯 집은 삶을 드러내는 기호다. 그릇이다.



내가 살고 싶은 집


현명한 눈을 가진 톰 하트만(Thom Hartmann)은

그의 저서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들’(원제 The last hours of ancient sunlight)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문명인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한정된 자원을 분별없이 퍼 쓰지 않았고, 피조물들 속에서 신성을 느끼며

근대인들보다 더 여유로웠다. 모든 존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꾀하는 의식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야 말로 한정된 에너지 속에서 현명하게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는 또한 새로운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은 인구증가와 생태계 파괴 등의 악순환을 초래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생 이전의 인류들이 살아오던 방식,

즉 미국 인디언 부족의 공동체적 생활방식과 세계관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이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매우 거창한 집이다.

 

첫째,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된 재료를 사용하지 않을 것.

그래서 문명이라는 이름에 지배당해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문명의 결과물로 생겨난 많은 제품들은 에너지의 집적이 과다한 것들이다.

그 제품으로 만들어진 집을 장만하자고 치자면 인생을 팔아서 집을 사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에너지의 집적이 적은 재료로 집을 짓자는 생각이다.

물론 기존에 만들어진 모든 재료를 깡그리 폐기하고 생태적인 재료만을 취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상황에 맞게, 현명하게 재료를 선택하는 것이 사회적인 에너지뿐만 아니라

집 짓는데 드는 에너지를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집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적은 집이어야 할 것.

그래서 또한 그 집을 유지하기 위해 문명이라는 이름에 지배당해 품위를 떨어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재료만 생태적이라고 해서 생태적인 집은 아니다.

집을 유지하는데 드는 에너지(비용이 아니다)를 최소화 하는 것이 바람직한 생태주택의 최대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집짓기가 늘 진행 중인 집이다.

완성된 꼴로 내 손에 굴러들어 온 것이 아니라 늘 보듬고 쓰다듬어서 나를 닮아가는 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편리하고 깔끔한 것만을 추구하는 완성형 주택은 그 뒤에 감춰져 있는 에너지 문제와 독성을 감수해야 할 수밖에 없다.

 

몇 가지 전제를 충족시킬 수 있는 내 살림집을 기성품에서 찾을 수는 없었다.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시민유산 3호로 확보한 동강 제장마을에 살림집을 지어야 하는 과제가 생기자

그런 고민이 다시 살아났다.

기왕에 선조들이 삶을 의탁하던 생태주택이 많긴 했지만 안락하고 따뜻한 삶터를 고려하자면 부족한 점이 느껴졌다.

에너지 투여가 많았던 대갓집 건축도 가치는 있지만 그것만을 우리의 전통이며 생태주택이라고 하기에도 억지가 있었다.

안락하게 품위를 유지 할 수 있지만 생태적인 집을 짓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고,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몸을 움직여 얻는 생활방식을 택하는 것이야 말로

진보이며 삶의 진정성을 담보 하는 것이라는 어른들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했다.

동강 제장마을에 집을 짓는 것은 내 삶을 시험하는 장이었다.

지난한 과정과 몸과 마음의 피로를 감내하고

동강사랑(東江舍廊-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동강 사무소)을 짓고 난 후의 소회(所懷)는 남다르지만

내겐 인생의 또 다른 거울로 남아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완성된 집이 아니다.

무릇 살아 있는 것은 늘 변해서, 그 변화무쌍함이 오히려 좋아서 나를 깨어 있게 하는 집이다.

단단하게 똬리를 틀고 변화를 거부하는 집이야말로 숨통을 쥐고 삶을 옭죄는 짐인 것에 틀림없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살아 있는 집이다. 나를 쥐고 흔드는 집이 아니라,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춰가는 집이다.



볏짚으로 집짓기


스트로베일 하우스(Strawbale House)의 역사는 100여 년 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볏짚으로 집짓기’라 할 수 있다.

평원 지대인 미국의 네브라스카 주에는 집을 지을 수 있는 나무나 돌이 부족했다.

그곳 사람들은 주로 잔디를 쌓아 집을 지었었다.

목축이 주업이던 그곳 사람들에게는 밀짚을 많이 비축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였다.

19세기 말, 그들은 드디어 말을 이용해 볏짚을 압축하는 베일러(baler)를 만들었다.

압축된 베일을 저장해서 임시창고를 만들면서 그들은 우연히 스트로베일 하우스를 고안해 내게 되었다.

‘볏짚으로 집짓기’는 전문가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농부들의 손에 의해 탄생되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자재로 부담 없이 창고를 만들다가 탄생된 집이다.

가축을 농업의 보조수단으로만 여긴 우리 선조들이 만일 전문 목축업자가 되었다면

우리나라에서 ‘볏짚으로 집짓기’가 먼저 생겨났을 수 도 있을 터이다.

‘볏짚으로 집짓기’를 처음 만나는 순간 나는 무릎을 쳤다.

그동안 생각해 왔던 여러 가지 조건을 한꺼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호주에서 열리는 교육에 참가 할 준비를 하며 동강 제장마을에 집을 짓는 일은 활기를 띄었다.

물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지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하고

시공 후의 하자에 대해서 책임질 마땅한 근거가 부족해서 고민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기후에 안전 할 것인가? 내구성, 혹은 내화성을 보장 할 수 있을까?

단열을 보장 할 수 있을까? 외형이 우리의 정서에 맞을 것인가? 시공의 어려움이 있지는 않은가?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을까? 등등의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2005년 4월. 호주에서 교육을 마친 친구들이 동강으로 오면서 국내에서는 최초로 ‘볏짚으로 집짓기’가 시작되었다.

열악한 환경에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며 4개월간의 혹독한 노동을 통해

2005년 8월 27일, 드디어 동강사랑을 미래세대에게 드린다는 헌정식(獻呈式)을 치룰 수 있었다.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결과를 본 많은 분들의 박수와 격려에 그간의 어려움이 봄 눈 녹듯 사라졌다.

 

‘볏짚으로 집짓기’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는 재료의 생태성이다. 온전하게 공업 생산에 의한 재료를 배제 할 수는 없어도

대부분의 재료를 자연소재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재의 경우 3~40년의 세월이 흘러야 건축재로 사용 할 수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볏짚은 매년 생산되는 것이기에 확보가 용이하고 비용이 저렴하다.

 

둘째는 단열성이 뛰어나다. 볏짚 뭉치를 통째로 쌓기 때문에 단열과 보온성이 좋아

따로 보온재를 쓰지 않아도 집을 아늑하게 유지해 준다는 것이 커다란 장점이다.

당연히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해서 집을 유지하는데 드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셋째는 통기성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공기는 안정적이지만 살아 숨 쉬는 벽체 때문에 생활하면서 생기는 각종 냄새를 자연스럽게 배출해 준다.

겨울 내내 청국장을 끓여도 냄새가 남아 있지 않아 집안 공기가 늘 쾌적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볏짚으로 집짓기’는 값싸게, 생태적이고 기능이 탁월한 집을 지을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볏짚으로 집짓기’는 거대자본에 의해 대량 생산되는 상품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기획해 만들어 가는 집의 전형이 되기에 충분한 방법이다. 이웃과 함께 주체적으로 삶을 기획해 볼 일이다.


동강사랑을 시작으로 ‘볏짚으로 집짓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다.

집짓기 재료가 생태적일 뿐만 아니라 기능 또한 탁월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과, 이웃과 어울려 자신만의 삶을 표현 할 수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집을 지으면서 이루어지는 두레와 연대는 집짓는 재미 뿐 아니라 사는 재미를 키워주기도 한다.

자신만의 집을 스스로 짓고자 모색하는 이가 있다면 ‘볏짚으로 집짓기’를 시도해 볼만한 일이다.

자기만의 색을 드러내는 집짓기를 해 볼 일이다.

출처 : 바람재 들꽃
글쓴이 : 스투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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