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의 남편, 김성립의 변
저는 김성립(金誠立)입니다.
명문 안동 김씨의 후손으로 28세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이 홍문관 저작(著作, 정 8품)을 지냈지요.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 31살의 아까운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나왔느냐고요 ? 저는 시인으로 유명한 허초희(許楚姬:허난설헌)의 남편으로, 제 자식이 엄마 만 감싸고 아비와 할머니를 욕해 화가 나 나왔습니다.
열다섯 살에 시집 온 허초희는 정말 철부지였어요. 양천 허씨 집안에서 귀엽게만 자랐고, 또 어려서부터 신동이라 칭찬만 들어 버릇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부덕(婦德)을 모르는 여자였어요. 마치 지독한 공주병이 걸린 사람 같았어요. 몇 번을 타이르고 얼렸으나 고집불통에 막무내였어요. 영 사는 재미가 있어야지요. 그러니 제가 어떻게 기방을 출입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랬더니 마누라가 저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원컨대 이승에서 김성립과 이별하고 죽어 길이 두보를 따르리라.”
와! 생각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아요. 물론 제가 밖으로 나도니까, 시어머니가 타일렀지요. 남편 말을 잘 따르고 살림도 잘하라고요. 그런데 도통 자기 비관만 하고 말을 듣지 않았어요. 똑똑한 마누라하고 사는 것보다 더 지겹고 신물나는 일은 없어요.
또 있어요. 처갓집에 우환이 끊이지 않으니까 마누라는 친정 생각만 하는 거여요. 마치 우울증에 걸린 환자 같았어요. 애교를 떨며 눈웃음까지 쳐주길 바라지는 않았어요. 이건 완전히 고집불통에 오만쟁이여요. 비록 시는 잘 지었는 줄은 몰라도 아내로서, 며느리로서는 빵점이어요, 빵점. 그런데 자식들이 이유없이 연달아 죽고 장인과 처남들이 죽자, 스스로 죽은 거여요.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저는 마누라가 미웠지만 그래도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마누라의 모습이 떠올라 후하게 장사를 지내 주었어요.
저는 마누라를 생각해 홀아비로 늙을려고 했으나, 대가 끊어진다며 온 집안이 새 장가를 가라고 성화였어요. 그래서 남양 홍씨를 얻어 새 살림을 차렸지요. 왜, 있잖아요. 혼자 살겠다고 독신을 선언한 여자들이 어느 날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핑게을 대며 결혼해 버리는 거요. 새 장가를 가자 정말 사는 재미가 났어요. 열심히 공부해 과거에도 급제했지요. 봐요. 남자는 다 여자 하기 나름 아니여요. 그런데 기막힌 일이 생겼어요. 이제야 좀 살맛이 난다 했더니 난리가 난 거여요. 관리로 있던 저는 나라를 구하고자 전쟁 터로 나갔고, 운이 나빠 그만….
남자로 태어나 똑똑한 마누라 데리고 살기는 정말로 어렵고 힘든 일이여요. 부부는 그저 조금 모자라는 사람끼리 서로 보완하며 도와주고 살아야 제 맛이지요. 그래야 행복해요. 그래도 저는 첫 부인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 사람 때문에 당대의 문인, 학자, 풍류객들이 이 외진 곳을 찾아와 술을 부어 주잖아요. 그 술 냄새가 너무나 좋아요. 본래 그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았으니 바로 위쪽에 있는 저에게 가져오세요. 저는 무지무지 좋아해요. 냄새만 맡고 있자니 정말 죽겠어요.
허난설헌을 찾아오시거든 계단으로 올라와 저에게도 술을 부어 주세요. 꼭 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이 글은 대동풍수학회 고제희 회장님의 글을 퍼 온 것입니다>
저는 김성립(金誠立)입니다.
명문 안동 김씨의 후손으로 28세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이 홍문관 저작(著作, 정 8품)을 지냈지요.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 31살의 아까운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나왔느냐고요 ? 저는 시인으로 유명한 허초희(許楚姬:허난설헌)의 남편으로, 제 자식이 엄마 만 감싸고 아비와 할머니를 욕해 화가 나 나왔습니다.
열다섯 살에 시집 온 허초희는 정말 철부지였어요. 양천 허씨 집안에서 귀엽게만 자랐고, 또 어려서부터 신동이라 칭찬만 들어 버릇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부덕(婦德)을 모르는 여자였어요. 마치 지독한 공주병이 걸린 사람 같았어요. 몇 번을 타이르고 얼렸으나 고집불통에 막무내였어요. 영 사는 재미가 있어야지요. 그러니 제가 어떻게 기방을 출입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랬더니 마누라가 저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원컨대 이승에서 김성립과 이별하고 죽어 길이 두보를 따르리라.”
와! 생각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아요. 물론 제가 밖으로 나도니까, 시어머니가 타일렀지요. 남편 말을 잘 따르고 살림도 잘하라고요. 그런데 도통 자기 비관만 하고 말을 듣지 않았어요. 똑똑한 마누라하고 사는 것보다 더 지겹고 신물나는 일은 없어요.
또 있어요. 처갓집에 우환이 끊이지 않으니까 마누라는 친정 생각만 하는 거여요. 마치 우울증에 걸린 환자 같았어요. 애교를 떨며 눈웃음까지 쳐주길 바라지는 않았어요. 이건 완전히 고집불통에 오만쟁이여요. 비록 시는 잘 지었는 줄은 몰라도 아내로서, 며느리로서는 빵점이어요, 빵점. 그런데 자식들이 이유없이 연달아 죽고 장인과 처남들이 죽자, 스스로 죽은 거여요.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저는 마누라가 미웠지만 그래도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마누라의 모습이 떠올라 후하게 장사를 지내 주었어요.
저는 마누라를 생각해 홀아비로 늙을려고 했으나, 대가 끊어진다며 온 집안이 새 장가를 가라고 성화였어요. 그래서 남양 홍씨를 얻어 새 살림을 차렸지요. 왜, 있잖아요. 혼자 살겠다고 독신을 선언한 여자들이 어느 날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핑게을 대며 결혼해 버리는 거요. 새 장가를 가자 정말 사는 재미가 났어요. 열심히 공부해 과거에도 급제했지요. 봐요. 남자는 다 여자 하기 나름 아니여요. 그런데 기막힌 일이 생겼어요. 이제야 좀 살맛이 난다 했더니 난리가 난 거여요. 관리로 있던 저는 나라를 구하고자 전쟁 터로 나갔고, 운이 나빠 그만….
남자로 태어나 똑똑한 마누라 데리고 살기는 정말로 어렵고 힘든 일이여요. 부부는 그저 조금 모자라는 사람끼리 서로 보완하며 도와주고 살아야 제 맛이지요. 그래야 행복해요. 그래도 저는 첫 부인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 사람 때문에 당대의 문인, 학자, 풍류객들이 이 외진 곳을 찾아와 술을 부어 주잖아요. 그 술 냄새가 너무나 좋아요. 본래 그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았으니 바로 위쪽에 있는 저에게 가져오세요. 저는 무지무지 좋아해요. 냄새만 맡고 있자니 정말 죽겠어요.
허난설헌을 찾아오시거든 계단으로 올라와 저에게도 술을 부어 주세요. 꼭 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이 글은 대동풍수학회 고제희 회장님의 글을 퍼 온 것입니다>
출처 : 바람재 들꽃
글쓴이 : 왜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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