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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별꽃님이 보내신 올해의 마지막 꽃편지

 

바람재 꽃님에게...!


11월의 첫 번째 일요일, 단풍은 숨가쁜 절정이었습니다. 
시내 가로수 벚나무는 홍등을 내건 듯 온통 붉게 상기되었고, 푸른 하늘 아래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하고 상쾌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었던 수도리 산길을 좋은 사람들과 정답게 걸었습니다. 같은 길을 걸으니 
도반이지요. 꼬닥꼬닥(제주 방언;천천히) 걷는 것이 이 시대의 '웰빙'입니다. 풍광이 뛰어난 제
주의 '올레길'이나 지리산의 '둘레길'처럼 김천에서도 멋진 '모티길'이 있습니다. 10km의 직지 
모티길과 15km의 수도리 모티길입니다. 증산면 수도리 마을과 원황점 마을을 연결하는 수도리 모
티길은 해발 800m의 능선에 위치하나,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포근한 산길입니다. 
'모퉁이'를 경상도 사투리로 '모티이~' 라고 하고,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모리이~'라고 부릅니
다. 부드럽게 구비치는 수도리 산길은 '모티이~’보다 '모리이~'라고 불러야 더 정감이 있습니다. 
수도리 가는 길은 누군가가 산불을 놓은 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모티길 초입에 들어서자 관리인이 입산 통제 기간이라고 막아섰습니다. 온갖 애교와 간청과 간식
을 바쳐가며 사정해서 연락처를 적어두고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숲은 벌써 단풍잎을 떨구고 나
목으로 선 나무들이 즐비했습니다.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자 흰 수피의 시원한 자작나무숲이 보이
다가 이내 낙엽송숲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을 늦도록 아무런 기척도 없다가 가을이 떠날 무렵 일제
히 단풍물이 드는 낙엽송의 화사한 군무에 모두들 탄성을 질렀습니다. 정오의 햇살을 받아 낙엽송 
단풍은 연두에서 노랑으로 점진적으로 변하는 파스텔톤의 빛깔로 눈이 부셨습니다. '단지봉'을 넘
어 '낙엽송 보존림'에 도착하자 수령 70년 이상의 우람한 낙엽송 수 백 그루가 미동도 않은 채 도
열해 있었습니다. 조금도 구부러짐 없이 쪽 곧은 기둥 위에 기다란 바늘잎 가지를 원뿔 모양으로 
늘어뜨린 모습은 정갈하고 기품이 있습니다. 단풍 중에서 낙엽송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 글이 
생각납니다. 
나뭇잎들이 거의 떨어진 숲에는 단풍든 낙엽송만이 눈에 가득 들어옵니다. 아스라한 산등성에도, 
가파란 벼랑에도 낙엽송 묘목을 빼곡하게 심었습니다. 고 어린 낙엽송도 연두와 노랑물이 반반으
로 들었습니다. 쓸쓸한 11월 말이 되면 낙엽송은 마지막으로 붉게 타오르다가 어느 날 문득 바늘
잎을 바닥에 모조리 떨구고 허허로운 모습으로 서있을 것입니다. 긴 겨울을 알리는 가슴 저미는 
풍경이지요. 그 때 숲은 붉은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그지없이 푹신할 것입니다.
멋진 경관을 연출하는 낙엽송을 보자 신바람이 나서 이야기했습니다.
"동행도 좋고, 경관도 좋으니 금상첨화네요. 어쩌면 좋대요?"
낙엽송은 '일본잎갈나무'라고도 합니다. 낙엽송은 성장속도가 빠른 극양수로 열렬한 빛의 신자
입니다. 소나무과에 들어가지만 매년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고는 떨어집니다. 잎은 밝은 녹색
으로 질감이 부드럽고 뒷면에 숨구멍줄이 있어서 흰빛이 돕니다. 봄철에 잎과 꽃이 함께 피며 
가을에 작은 솔방울 열매가 열립니다. 솔방울 조각은 50 ~ 60개로 끝이 뒤로 젖혀지며 갈색입
니다. 북부지방의 산에서 자라는 비슷한 '잎갈나무'는 솔방울조각이 25 ~ 40개로 조각 끝이 곧
습니다. 
수도리 모티길을 걷다보면 두 그루씩 마주선 나무들이 많이 보입니다. 낙엽송도 있고 느티나무
도 있고 소나무도 있습니다. 두 나무 사이에는 가지가 적고 바깥쪽으로 많은 가지를 뻗어 사랑
과 공존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두 나무가 붙어서 하나가 된 연리목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입니
다. 두 나무는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서 서로를 감싸듯 보호하면서 세월의 강물에 발을 담그고 
말없이 나이테를 그려갑니다. 이런 나무를 '혼인목'이라고 합니다. 같이 살다가 한 나무가 먼
저 죽으면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다른 나무도 따라서 죽는다고 합니다. 
낙엽송 단풍에 취해서 구름 위를 걷듯 내려오니 이내 종점인 원황점 마을에 닿았습니다. 
원황점 마을 가운데에는 황토 벽돌로 지은 멋진 집이 있습니다. 모티길 안내를 맡은 선생님의 
주선으로 황토집에 들어가서 따뜻한 고구마와 오미자차 대접을 받았고 머루주도 선물로 받았
습니다. 황토집 앞에는 소박한 성모마리상이 서있습니다. '지례성당 황점 공소'입니다.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풍금이 보이고 나무로 만든 긴 의자 몇 개와 튼실한 나무 십자가, 
흰색 천으로 만든 제단 앞에는 꽃이 놓였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습니다. 
"오늘 모티길을 같이 걸은 사람들과 세세생생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게 해주세요." 
수도리 모티길은 몇 번이고 걷고 싶은 길입니다.
눈부신 새봄에는 연둣빛으로 옷을 갈아입은 낙엽송을 보러 다시 오고 싶습니다. 
단풍은 끝났고 이제 인고와 침묵의 시간입니다. 
인디언들은 12월을 '늑대가 달리고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이라고 했습니다.  
12월에도 부디 청안하세요. 
                                             2010년 십이월 초하루 바람재 운영진 드림
이고들빼기--정가네님

가막살나무--어진내님

구골나무--둥둥님

광나무--주이님

광대나물--여행나라님

새박--김진사님

낙엽송--별꽃

영종도 칠면초--한물결님

참나무 겨우살이--여왕벌님

튤립--린네아님

희호재 국화--가을하늘님

복자기나무--파란하늘꿈님

덩굴모밀--청로님

개쑥부쟁이--청로님

털머위--산으로님

산수유--둥굴레님

주홍서나물--터앝님

서어나무--물푸레나무님

산호수 열매--사랑초님

남천--혜오님

미파꽃--피어리스님

좀작살나무--초아님

산국--가을날님

불국사 가을 축제--안여사님

풍년화--아델님

익산 국화 축제--아리울님

애기동백--백화님

노박덩굴--물레방아님

좀딱취--남산제비꽃님

붉나무 열매--아델님

철쭉 분재--큰곰님

애기향유--아마릴리스님

박주가리 씨앗--시연님

주름조개풀꽃--산바람님

출처 : 바람재 들꽃
글쓴이 : 정가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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