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사는이야기

부도덕으로 살거다?

 부도덕으로 살거다/ 손현숙

 


 머리 실핏줄이 막혀서, 하도 기가 막혀서 덜컥 누워버린 늙은 엄마, 늙은 아버지가 병문안 오면 슬쩍 눈 흘기면서 대놓고“가소, 마”한다 그리고 곧이어 “부도덕한 늙은이!” 혼잣말인 척 짐짓, 다 들리도록 중얼거린다 천 번도 더 들은 저 말, 삼강오륜으로 중무장한 우리엄마는 지금 입만 살아서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있지만, 평생 부도덕했던 우리 아버지 팔순을 넘기고도 정정하게 훠이 훠이 세상 끝까지 마실 다닌다

 나, 이제부터 무조건 부도덕하게 살거다 도덕 찾다가 늙어, 어느 날 뒷목 잡고 넘어가느니, 요놈의 사탕 같은 세상 실컷 빨면서 들통 나지 않게 시치미 딱 잡아떼고 치맛자락 살살 흔들면서, 살거다

 부도덕한 늙은이! 그 누가 뭐라 뭐라 씹어도 끄떡없는 아버지, 지금 엄마 등 쓸어준다 발 닦아준다 에그그, 지금 저토록 행복한 엄마, 그러니까 나, 벽에 똥칠 할 때까지 할 짓 못할 짓, 다 하면서 오래 살거다 그렇게 늙어 꼬부라질 때까지 인간답게 아버지처럼…, 인간답게 엄마처럼…,


- 시집 『너를 훔친다』(문학사상사, 2002)